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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Berlin) - 방문 추천지 TOP 10

category Travel/독일 2018. 11. 27. 22:57

 

 


 

 

 

Charlottenburg  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 Victory Column → Reichstag Building → Brandenburg Gate →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 Checkpoint Charlie French Cathedral → Berliner Dom → Eastside Gallery St. Mary's Church

 

 

1. 베를린 (Berlin)

 

'제주도 한 달 살기'와 유사하게 '베를린 한 달 살기'가 유행인가 보다.

베를린은 다른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 값이 저렴하다.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 값은 베를린의 다이내믹한 경제 성장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만큼 베를린에는 인구유입도 많고, 분위기가 활기차다.

 

 

 

베를린 (Berlin) [각주:1]


독일의 수도이다. 2014년 12월 현재 인구 3,562,166명으로 독일 내 단일 규모로는 최대의 도시이다. 독일 북동부 슈프레 강과 하펠 강 연안에 있다. 도시 전체가 브란덴부르크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베를린 자체도 연방주이다. 

 

초기 역사

약 1,500년 전에는 현재의 베를린 지역에 다양한 슬라브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독일인 정착자들이 1100년대에 이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베를린은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슈프레 강의 북동쪽 둑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슈프레 강의 섬에서 쾰른(Coelln)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두 마을은 통상의 중심지였다. 1307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이 그들의 공동 방어를 위한 연합을 설립하였고, 공통의 시청사를 지었다. 15세기에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주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호엔촐레른 왕가가 베를린을 그들의 관저로 만들었다. 30년 전쟁 중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인구가 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

베를린은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래 다시 번영하였다. 그는 브란덴부르크를 1640년부터 1688년까지 통치하였고, 산업을 촉진시키고 건설에 후원하였다. 그의 통치아래, 슈프레 강과 오데르 강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였다. 170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1710년에는 베를린, 쾰른과 3개의 이웃 집단들이 통합하여 하나의 베를린을 이루었다. 1700년대에 베를린은 작은 읍에서 번영하는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로 증대하였다. 예술과 과학이 번창하였고, 산업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1806년부터 1808년까지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그가 떠나자 독일의 강국이 된 프로이센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 후 1871년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독일의 수도였다. 도시의 인구는 1871년에 826,000명에서 1910년에 2,076,200명으로 늘어났다.

불안한 시대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에 독일 제국이 무너졌고, 베를린은 새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파업, 폭동,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도시는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베를린은 계속 자라났고, 1920년에는 7개의 도시들, 59개의 마을, 27개의 소유지가 베를린에 합쳐졌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로 번져간 경제 대공황에 의하여 타격을 받아, 후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세워지는 원인이 되었다.

분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베를린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다. 서베를린의 주권은 서독에 있었지만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 완전히 둘러싸인 월경지가 되었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고, 서베를린은 서독일의 수도가 되지않고 본이 서독일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이 베를린을 차지하여, 그들의 점령지를 4개로 나누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베를린 시민들이 늘자, 이를 막기 위해서 독일민주공화국 정부는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는데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빌리 브란트는 바로 이 때 서베를린의 시장직을 역임했다.

통일 이후 독일의 수도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해체되고,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베를린은 연방 주 지위를 얻었다. 도시이자 독일의 연방주인 곳은 함부르크와 브레멘 뿐이다. 통일 이전부터 동서독 모두의 수도였기에 별다른 이견없이 1991년에 수도로 확정되었다. 현재 시장은 미하엘 뮐러(2014 ~ )이다.


 

 

2.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Charlottenburg)

 

□ 운영시간 : 10:00-18:00

□ 입장료 : 궁전 € 12 (*정원 무료입장)

□ 웹사이트 : > https://www.spsg.de/en/palaces-gardens/palaces-and-gardens-overview/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Schloss Charlottenburg] [각주:2]


베를린에 있는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 건물이다. 1695년에 처음 지어졌고 계속적인 확장과 증축을 거쳐 1790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러한 이유로 궁전의 방들마다 특색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도자기 전시실에는 일본과 중국의 도자기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데 수집품의 종류와 규모가 매우 크다. 

도자기 전시실 맞은편에는 궁정 예배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화려한 왕실 전용석과 예배단을 볼 수 있다. 주요 전시품들이 있는 본관 1층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만 가능하고 나머지 지역은 자유 관람이 가능하다. 궁전 뒤로는 슈프레강(Spree River)을 따라서 프랑스식 바로크 정원과 19세기 영국식 대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궁정 안 동쪽 익랑과 서쪽 익랑에는 각각 미술공예박물관과 선사, 초기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3.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Kaiser Wilhelm Memorial Church)

 

□ 운영시간 

 - 월~토: 09:00-18:00

 - 예배 : 일요일 10:00-18:00

□ 웹사이트 : > https://www.gedaechtniskirche-berlin.de/page/1611/information-visitors-where-find-us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Kaiser Wilhelm Gedächtniskirche] [각주:3]


독일 최대의 번화가로 유명한 쿠담거리에 위치한다. ‘썩은 이빨’이라고 불리며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입은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교회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대신 바로 옆에 육각형으로 된 교회를 새로 지었다. 새 교회는 푸른빛을 띠는 돌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독일의 첫 번째 황제였던 빌헬름 1세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1891년부터 1895년까지 4년 여에 걸쳐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4. 베를린 전승기념탑 (Victory Column)

 

 

횡단보도를 통해 건너갈 수 있으며, 왕궁의 사냥터로 쓰였다는 티어가르텐 숲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현재 티어가르텐 숲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있고, 베를린 시민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영국 하이드파크와 함께 3대 공원으로 손꼽힌다.

 

▲ 베를린 전승기념탑에서 바라본 베를린 시내

□ 운영시간

 - 4월~10월 : 월~금 (09:30-18:30), 토~일 (09:30-19:00) 

 - 11월~3월 : 월~금 (09:30-17:30), 토~일 (09:30-17:30)  

□ 입장료 : € 3

□ 웹사이트 

 > https://www.berlin.de/sehenswuerdigkeiten/3560160-3558930-siegessaeule.html

 

베를린 전승기념탑 [Berlin Victory Column] [각주:4]


프로이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지어졌다. 1864년에서 1873년에 걸쳐 하인리히 슈트라크스(Heinrich Stracks)가 건축했다. 독일 중심가에 있는 그로쎄 티어가르텐(Große Tiergarten)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독일 제국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 세워져 있다가 1939년에 나치스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탑의 꼭대기에 있는 승리의 여신상은 프리드리히 드라케(Friedrich Drake)가 조각한 것으로 8.3m 높이에 무게는 35톤에 달한다. 탑은 전체적으로 붉은색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기둥의 모자이크 유리는 안톤 폰 베르너(Anton von Werner)가 디자인 했다. 탑은 네 부분의 사암 블록으로 되어 있는데 세 부분은 각각 세 개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네번째 부분은 1938년에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함락한 기념으로 금으로 장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고 보존됐다. 오늘날에는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코스로 꼽힌다.


 

5.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Reichstag Building)

 

연방의회 의사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약이 필요하다.

의사당 앞 게이트에서 소지품 검색을 진행한 후, 어느정도 인원이 모이면 인솔자가 와서 안내를 한다.

의사당 4층까지는 엘레베이터를 통해 함께 올간 후,  안내책자·오디오 가이드를 수령 후 개인별 자유관광 시간을 갖는다.

돔이 있는 4층 전망대에서 베를린 시내를 볼 수 있다.

 

(*현장예약도 가능하나, 줄이 정말 엄-청 길다 - 비추천)

 

 

□ 운영시간 : 08:00-24:00 (*마지막 입장 21:45)

□ 입장료 : 무료

□ 웹사이트 (예매하기) : > https://visite.bundestag.de/BAPWeb/pages/createBookingRequest.jsf?lang=en

□ 주의사항 : 예약내역 및 신분증 (ex:여권) 지참할 것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Reichstag] [각주:5]


독일 의사당의 다채롭고 파란 많은 역사는 이러한 종류의 건축물의 상징적인 힘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독일 의사당은 1894년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건축가 파울 발로트(1841~1912년)가 지은 제2제국의 제국 의회 의사당이었다. 독일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력하게 표현하고자 한 건물로, 각 지방의 대표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1933년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그 책임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덮어씌우려 한 나치당 과격분자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간발의 차로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대참사는 면했으나 이어진 연합군의 공습으로 또다시 심하게 파손되고 말았다. 정부 청사로 사용하기 위해 1958년부터 1972년 사이에 어찌어찌 복구를 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제국 의회 의사당은 다시 하나가 된 독일의 입법부, 연방 의회의 본거지가 되었다. 1995년 환경 설치 예술가 크리스토와 진-클로드는 의사당 건물 전체를 하얀 폴리프로필렌 직물로 모조리 싸버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거슬리는 공명이 알려지게 하였다. 1999년 영국의 건축가 포스터 경(1935년생)은 벽만 남기고 건물을 모두 뜯어낸 뒤 내부의 안마당 위로 가벼운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돔을 덮었다. 그 양옆으로는 나선형 경사로를 매달아서 공사 중에도 의회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포스터의 진정한 위대함은 빛의 활용에서 드러난다. 거울로 덮은 환기통이 돔에서 내려와 아래층의 조명과 환풍을 동시에 해결해준다. 밤에도 조명을 환하게 밝힌 돔은 독일 민주주의의 횃불처럼 빛나고 있다.


 

 

6.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독일여행의 관문지이자, 티어가르텐으로 향하는 입구이기도 하다.

베를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고, 갖은 풍파를 겪은 베를린 내의 작은 베를린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닫혀 있는 한, 독일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 베를린 시장, 리하르트 폰 바이츠재커, 1980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각주:6]


동쪽과 서쪽 베를린 사이의 상징적인 관문

베를린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에펠 탑이 파리를 상징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짓게 한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독일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여, 이 건물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관문인 프로필라이아의 영향을 받았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의 삼각형 지붕은 두 줄로 늘어선 여섯 개의 도리스식 기둥 위에 얹혀 있고 기둥 사이로 다섯 줄의 차도가 나 있는데, 약간 더 넓은 중앙의 길은 왕이나 그의 손님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문 위에 있는 것은 고전적인 '콰드리가'–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에 탄 여신상–인데, 원래는 평화를 형상화하여 조각했던 것이다. 이 콰드리가는 1806년 프랑스에서 빼앗아 갔는데, 다시 돌아오면서 여신이 지닌 올리브 나무 관은 철로 된 십자가로 대체되고 조각상은 승리의 여신상이 되었다. 19세기 동안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군사적 막강함을 상징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관점은 나치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는데, 나치는 전쟁터로 행군하는 군사들이 이 문을 지나는 모습을 영화로 촬영해 두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전쟁이 끝난 후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핵심적인 관문으로서 더한 중요성을 얻었는데, 이러한 중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1971년 이 문이 폐쇄되면서 더욱 강조되었다. 1989년 동독이 무너지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다시 열려 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서독의 수상 헬무트 콜은 이 문을 통해 걸어가 동독의 총리 한스 모드로우의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7. 메모리얼 투 더 머더드 쥬스 오브 유럽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왈칵 눈물이 났던 곳이다.

유대인을 비롯한 2차 세계대전의 아픔.

 

이에 대한 독일의 솔직한 고백

개인적으로 베를린에서 가장 좋았고, 많은 생각에 잠겼던 곳이다. 

 

인류에 대한 예의와 그 실존.

'피해자, 피의자, 방관자, 또다른 누군가'가 아니었음에도 호소력있게 다가왔다.

추모비뿐만 아니라, 그 옆 기념관도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독일 유대인 박물관은 시간여건 상 방문하지 못 하였다. 정말 아쉬웠다)

 

 

□ 운영시간 (*마지막 입장 45분 前)

 - 4월~9월 : 화~일 10:00-20:00

 - 10월~3월 : 화~일 10:00-19:00

 

□ 입장료 : 무료 (*입장객 수 제한)

□ 웹사이트 : > https://www.stiftung-denkmal.de/en/visit/opening-times-directions.html#c1468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각주:7]


In the middle of the city is the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and imposing place of remembrance and warning.

A place of contemplation, a place of remembrance and warning. Close to the Brandenburg Gate in the heart of Berlin you will find the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The memorial

In 1999, after lengthy debates, the German parliament decided to establish a central memorial site, the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The competition to design it was won by the New York architect Peter Eisenman. The memorial was ceremonially opened in 2005.

On a site covering 19,000 square metres, Eisenman placed 2711 concrete slabs of different heights. The area is open day and night and from all four sides you can fully immerse yourself in the fully accessible spatial structure. The memorial is on a slight slope and its wave-like form is different wherever you stand. The uneven concrete floor gives many visitor a moment of giddiness or even uncertainty. Its openness and abstractness give you space to confront the topic in your own personal way. The sheer size of the installation and its lack of a central point of remembrance call into question the conventional concept of a memorial. This creates a place of remembrance, but not with the usual means.

One very special experience is the virtual concert Vor dem Verstummen by Harald Weiss, which is available for iPhones.

 

A place of information

The memorial to the Shoah is supplemented by the underground information centre, also designed by Eisenman. In a space covering 800 square metres you can find information on the victims and the locations. Themed rooms such as the Room of Dimensions, the Room of Families, the Room of Names and the Room of Sites deal with the fates of individuals, with photographs, diaries and farewell letters. Short biographies take the victims out of their anonymity. Historical photographs and film footage show the sites of persecution and extermination.


 

 

8. 체크포인트 찰리 (Checkpoint Charlie)

 

우리나라의 판문점 같은 곳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판문점은 매우 엄격하게 외국인조차 왕래가 통제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합리적인 쪽인 방향으로 통일이 되어, 판문점이 독일의 체크포인트 찰리처럼 과거의 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체크포인트 찰리 [Checkpoint Charlie] [각주:8]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연합군과 외국인, 외교관, 여행객들이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었던 유일한 관문이었다. 이곳 검문소의 주요 업무는 서독의 연합군이 동독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록하고, 동독에서의 체류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외국인 여행객 역시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동독에서 서독 쪽으로 나올 때는 검문을 받지 않았다. 1989년 11월 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1990년 6월 22일 이 검문소도 철거되었다. 당시의 검문소를 재현해 놓은 곳 바로 옆에는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벽박물관(Haus am Checkpoint Charlie)이 있고, 주변에는 베를린 장벽 조각이 붙어 있는 엽서 등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 서 있다.


 

 

페터 페히터 사건 [각주:9]


1962년에 발생한 ‘페터 페히터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페히터가 친구 헬무트 쿨베익과 함께 체크포인트 찰리 주변의 철조망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려다 동독군이 쏜 총에 맞았는데, 철조망 위에 그대로 엎어진 채 오랜 시간 그냥 방치되어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다. 그때의 처절했던 장면은 독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타전되었고, 체크포인트 찰리는 다시 한 번 세계인의 머릿 속에 ‘동서 분단’이라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극단적 냉전’의 상징적인 장소로 각인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숨진 곳에는 'er wollte nur die Freiheit(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을 뿐이다)'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9. French Cathedral

 

프랑스 돔 [French Cathedral][각주:10]


독일 베를린의 겐트아르멘마르크트(Gendarmenmarkt) 광장에 있는 교회다. 본래 명칭은 '프리드리히슈타트의 프랑스 교회'(Französische Friedrichstadtkirche)이다.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교도가 1701년에서 1705년에 걸쳐 건축했다. 당시 베를린 인구의 25% 가량이 위그노교도였다. 프랑스의 샤랑트 생 모리스(Charenton-Saint-Maurice)에 있는 위그노교회를 모델로 지어졌다. 1785년에 본 건물 위에 둥근 탑이 올려지면서 프랑스 돔(Französischer Dom)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본래의 교회 건물과 나중에 지어진 탑은 소유주가 달라서 연결된 통로가 없다. 겐트아르멘마르크트 광장을 사이에 두고 독일 돔(Deutscher Dom)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어 두 교회가 서로 대칭을 이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게 파괴됐다가 1977년에서 1987년에 걸쳐 재건됐다. 1987년에 베를린 시의 750주년을 기념해서 이 교회의 탑 안에 연주가 가능한 60개의 종이 설치됐다. 현재까지도 예배 장소로 사용되며 독일 개신교의 총회 장소로도 사용된다.  


 

 

10. 베를린 돔 (Berliner Dom)

 

어색한 만남이라 생각했던 민트초콜릿처럼, 베를린 대성당은 잿빛의 콘크리트위에 민트색의 돔이 올려져 있다.

전망대가 있는 민트색의 돔에서는 베를린 '박물관 섬 (Museum Island'를 한눈에 볼 수도 있다.

성당 앞 넓은 잔디 밭에는 비누방울 놀이가 한창이였고, 베를린의 하늘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실 베를린 대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당시 재건되는 모습은 돔 내부에서 볼 수 있다.

 

 

□ 운영시간

- 월~토 : 09:00-20:00

- 일, 공휴일 : 12:00-20:00

□ 입장료 (*매표소 건물 내부 오른쪽 위치)

 > € 7 (*국제학생증 € 4) 

□ 웹사이트

 > http://www.berlinerdom.de

□ 가는 법 

 > 100번 버스 탑승 후 'Lustgarten' 정거장 하차 (*정거장의 맞은편 위치)

 

베를린대성당 [Berliner Dom] [각주:11]


박물관 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47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검게 그을린 듯한 벽면과 푸른빛의 돔 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엄청난 폭격을 받아 본래의 화려함을 거의 소실하고 아주 단순하게 바뀐 것이라고 한다. 프로이센 왕과 독일제국 황제를 배출한 명문가인 호엔촐레(Hohenzolle) 가문의 묘지 용도로 지어진 교회였기 때문에 지금도 안에 들어가면 눈부시게 화려한 호엔촐레 가문 사람들의 관들이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천정의 모자이크화가 아름다운 교회 안에서는 종종 오르간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성당 바로 앞에는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이라고 하는 넓은 잔디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 정원은 원래 채소밭이었다가 나중에 녹지로 변경되었다. 나치 정권 때에는 이곳을 시위와 퍼레이드하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1.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Eastside Gallery)

▲ 위 그림은 드미트리 브루벨이 그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 에리히 호네커의 키스를 표현한 작품으로, 심각한 훼손으로 인해 2009년 복원되었다.

 

슈프레 강을 따라 걸으면, 아름다운 벽화를 만날 수 있다.

리사이클링을 넘어, 하나의 작품이 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독일인들의 마음을 찢어 놓았던 베를린 장벽은 재탄생하였다.

그리고 그 조각의 흔적은 우리나라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East Side Gallery][각주:12]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동쪽에 1990년 세계 각국의 미술 작가들이 그린 105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공개 갤러리로 알려져 있다. 갤러리에 그려진 그림은 변화된 시간을 기록하고 행복감과 더 나은 희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더 자유로운 미래를 표현하였다.

2006년 7월, 슈프레 강과 O2 월드 간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존의 위치에서 40m 서쪽으로 옮겨졌다.[1]

2013년 3월, 고급 아파트 건설을 위해 갤러리가 조성된 장벽 중 23m 구간의 철거가 계획되었고, 이에 반발한 시민들의 시위로 인해 철거 작업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반발에도 불구하고 5m 구간이 기습적으로 철거되기도 했다

많은 그림이 침식, 낙서, 반달리즘 등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한 비영리 단체에 의해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는 작성이 2009년부터 시작되어, 작품의 완전한 복원과 보존을 목표로진행되고 있다.


 

 
 

12. 베를린 마리엔 교회 (St. Mary's Church)

 

강렬한 붉은색의 첨탑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부유럽을 강렬한 소용돌이 빠뜨렸던 종교개혁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중세예술의 걸작이라 불리는 '죽음의 무도'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마리엔교회 [St. Mary's Church, Berlin][각주:13]


독일 베를린의 중심가에 있는 오래된 교회이다. 칼 리브크네히트 거리(Karl-Liebknecht-Strasse)에 있으며 알렉산더광장(Alexanderplatz), TV 탑(Fernsehturm) 등과 인접해 있다.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92년이다. 본래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됐다. 베를린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교회 가운데 하나이다. 건물의 오래된 부분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이 교회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벽돌로 되어 있다. 인근에 있는 붉은 시청사(Rotes Rathaus)는 이 교회에서 모티브를 얻어 설계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심각하게 파괴됐다. 독일 분단 시절에는 동독 지역에 속해 있었고, 1950년대에 동독 정부가 이 교회를 재건했다. 교회 앞에는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동상이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중세 예술 작품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꼽히는 '죽음의 무도'(Totentanz) 프레스코 벽화가 이 교회 안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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