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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2. 주차

3. 사진포인트

 


 

 

1. 수원 화성행궁 야간개장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합니다.

그 중 화성행궁은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으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일제강점기에는 병원과 경찰서로 쓰이기 시작했고, 1920년대 병원 건물이 신축되며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현재는 낙남헌과 노래당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2002년에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쳤습니다. 2016년부터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의 발굴조사와 복원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수원문화재단)

 

관람안내

 

🗓 2022년 5월 1일 ~ 10월 30일 (수~일) 

🕑 18:00~21:30 (*입장마감 21:00)

🎫 성인 1,500원 (*수원시민할인없음)

🐶 반려동물 X

📞 031-290-3600

🅿 수원행궁노상공영주차장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38-6)

📍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 https://www.swcf.or.kr/?p=260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www.swcf.or.kr

 

 

수원화성행궁

ⓒ수원문화재단

 

 

어느덧 초여름의 노을이 깊게 대지를 적십니다. 

조금이나마 선선해진 날씨 덕에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신풍루

 

표를 끊은 후 신풍루를 통해 화성행궁에 입장합니다.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입니다. 처음에는 진남루鎭南樓라 부르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로 바꿨습니다. 신풍루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인 풍패豐沛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왕의 고향 풍패지향豐沛之鄕으로서 화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2층의 누각 구조로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쓰고, 위층에는 큰 북을 두어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문루 좌우에는 행랑을 두었고, 양쪽 끝에는 군영을 배치해서 경호 체제를 갖췄습니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때 신풍루에서 수원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베풀었는데, 당시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원문화재단)

 

 

좌익문을 지나 중앙문으로 갑니다. 

중앙문 옆에는 무지개빛을 내는 토끼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봉수당이 형형색색의 불빛을 받아 색다르게 보입니다. 

봉수당은 효심이 담겨있는 건물입니다.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입니다. 조선 정조 13년(1789)에 고을 수령이 나랏일을 살피는 동헌으로 지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장남헌壯南軒이었으나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계기로 봉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궁궐에서는 대비나 상왕이 머무는 건물에 목숨 수壽 자나 길 장長 자를 붙이는 전통이 있어,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건물은 정면 7칸으로 일반 동헌과 마찬가지로 대청과 방을 둔 구조이나,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지나는 길인 어로를 두었고 건물 앞에는 넓은 기단인 월대를 갖추었습니다. 어로와 월대는 일반 동헌에는 없고 임금이 머무는 공간에만 설치하는 시설입니다. 1795년 윤 2월 13일,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가 열리던 날 봉수당 월대 앞에 넓은 무대를 설치하고 궁중연희가 펼쳐졌습니다. 당시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원문화재단)

 

 

제가 좋아하는 궁궐의 포인트입니다. 

수많은 기와지붕들이 만들어내는 구조의 시각적인 즐거움과 하늘을 솟은 처마, 대청마루. 

붉은빛이 감도는 목재와 대쪽같이 푸른 녹색이 만들어낸 색감의 조화. 

정말 아름답습니다.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입니다. 조선 정조 18년(1794) 화성행궁에 장락당을 만들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습니다. 정조가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는데,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복내당은 처음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794년에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면서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경기도립병원이 들어서면서 철거되어 화성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습니다.

 

미로한정 가는 길

 

미로한정 가는 길입니다.

길게 뻗은 담벼락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청사초롱이 미로한정 가는 길을 밝힙니다.

 

 

드디어 화성행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에서는 화성행궁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습니다.

미로한정은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미로한정(未老閑亭)은 화성행궁 후원에 세운 소박한 정자입니다. 조선 정조 13년(1789)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이전한 이후에 지었습니다. 처음 이름은 육면정六面亭이었으나 1795년에 미로한정未老閑亭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는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未老得閑方是閑’라는 시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화성 축성을 막 시작한 1794년 정월, 정조는 미로한정에 올라가 허허벌판이던 수원부에 1천여 집이 들어서 번성한 모습을 바라보며 관리들을 칭찬했습니다. 정조 재위 기간 동안에 활약한 화가 김홍도는 미로한정 주변에 가을 국화가 가득한 모습을 ‘한정품국閒亭品菊’이라는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화성 추팔경, 한정품국 (김홍도),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미로한정에서 내려다본 화성행궁

 

개인적으로 올해 경복궁, 창경궁 야간개장을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조금이나마 그런 아쉬움이 이번 화성행궁 야간개장을 통해 해소가 되었습니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았고 사람도 많지 않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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