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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 부소산성 → 정림사지 → 나성



1. 부여군(扶餘郡)


중흥의 땅 부여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에 백제 개로왕은 전사하였다. 

그 후, 문주왕이 백성들을 이끌고 웅진, 지금의 공주로 천도하였고 '웅진 백제' 시대를 열었다.

두 번째 수도에서 무령왕은 백제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아들 성왕은 이에 만족하지 았았다.

그는 눈부신 해상강국 한성백제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했고 한강처럼 넓은 강과 개활지를 닮은 '부여'로 천도하였다.

부여는 백제 성왕의 중흥의 꿈을 담았고 이를 '사비 백제'라 불렀다. 

 


부여군[각주:1]


부여군(扶餘郡)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으로 논산시, 서쪽으로 보령시와 서천군, 북쪽으로 청양군과 공주시, 남쪽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군산시와 접한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금강이 흐르며,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부여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백제 문화의 유물·유적이 산재해 있는 문화 관광지이다. 

백제시대 부여의 명칭은 사비이며, 백제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538년)로 바꾸고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이후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 수도였다. 

매년 10월 공주시와 함께 백제문화제를 개최한다. 명소로는 백제시대 문화재인 부소산성과 백제의 별궁 연못이었던 궁남지 등이 있고, 백제문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부여의 관북리 유적·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와 부여 나성의 등 4곳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군청 소재지는 부여읍이고, 행정구역은 1읍 15면이다.





2. 궁남지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기에 좋은 곳이다.

7월 초에 연꽃축제를 하니, 시기를 맞춰가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아름드리 나무가 여러그루 있지만, 따가운 여름 햇살을 막기에 엿부족이다. 

양산이나 챙모자 등 햇빛을 막을만한 물건을 가져가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연못 궁남지[각주:2]


궁남지는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634) 궁의 남쪽에 못을 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丈仙山)을 상징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이 연못은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못의 동쪽 언덕에서 백제 때의 기단석과 초석, 기와조각, 그릇조각 등이 출토되어 근처에 이궁(離宮)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관광지이다. 7월에는 천만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리고,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 운영시간 : 상시개방 & 연중무휴

□ 입장료 : 무료

□ 웹사이트 : http://lotusfestival.kr/

□ 지도



▲ 산책로


▲ 연꽃 조경


▲ '서동의 길' 주변

▲ 궁남지 기념비


▲ 동문광장 휴게쉼터쪽


▲ 백제 무왕(서동)과 선화공주


▲ 6월의 연꽃






3. 부소산성


백제의 마지막 잎이 떨어졌던 곳이다. 

'삼천궁녀 이야기'와 백제의 마지막 항전 '백강 전투'기 있던 곳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숨결이 담긴 곳이다.



□ 어플리케이션 다운 (아이폰) : 다운로드 받기

□ 운영시간 (연중무휴)

 - 하절기(3~10월) 08:00~18:00

 - 동절기(11~2월) 09:00~17:00

□ 입장료

 - 어른 : 2,000 

 - 어린이 : 1,000




백제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 부소산[각주:3]


부소산(扶蘇山)은 부여읍 쌍북리, 구아리, 구교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6m 고도를 가진 부여의 진산이다. 평지에 돌출하였으며, 동쪽과 북쪽은 가파르고 백마강과 맞닿았다. 부소산의 산 이름은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 처음 선보이며, ‘부소(扶蘇)’의 뜻은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松)’의 뜻이 있어, 부소산을 ‘솔뫼’라고 보는 학설이 유력하다.

부소산은 평상시에는 백제왕실에 딸린 후원 구실을 하였으며, 전쟁때에는 사비도성의 최후를 지키는 장소가 되었던 곳이다.

부소산 내에는 군창지,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삼충사, 서복사지, 영일루, 고란사 등 여러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산이다.

부소산 서쪽 낭떠러지 바위를 가리켜 낙화암이라 부른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낙화암(落花巖)



낙화암은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이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의 침입으로 백제가 멸망할 때 수많은 백제인들이 여기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이 꽃잎이 지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하여 낙화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들의 의연한 죽음을 기억하는지 백마강은 푸르디 푸르다.



고란사



고란초가 많아서 고란사라 불린다. 

유난히 물맛이 좋아 백제 임금들은 이곳의 물만 먹었다고 한다. 

고란초의 꽃말은 '포기하지 마세요'이다.

나당연합군의 침입으로 멸망한 이후에도 백제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백제 부흥운동을 펼쳤다. 


낙화암을 따라 절벽 아랫길로 내려가면 고란사의 시원한 물 맛을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란사의 물은 나이를 젊게 해준다 한다.

대부분 사람이 젊음을 꿈꾸듯 많은 이들이 한잔 두잔의 물로 입을 적시고 간다.  



사자루



'사자루'는 조선시대에 지은 누각이다.

'사자'는 백제 '사비'를 뜻하니 '사비루'라고도 할 수 있다. 

백제시대 때는 달맞이를 하는 누대인 '송월대(送月臺)'가 있었다고 한다.





4. 정림사지


정림사지 5층석탑




정림사지 5층 석탑[각주:4]


정림사는 백제 성왕이 538년 사비성(부여)으로 도읍을 옮길 때 건축한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로 왕궁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림사지 절터 한가운데 자리한 정림사지5층석탑은 높이가 8.33미터의 결코 작지 않은 탑으로 탑신부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민흘림기법을 적용하여 상승감을 보여주는 등 장중하면서 부드럽고 육중하면서 단아한 세련된 백제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백제계 석탑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1층 몸돌에는 신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하고 세운 기념탑”이란 글씨를 새겨놓아 한동안 소정방이 세운 “평제탑”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는 정림사가 사비 백제의 중심이자 상징이었음을 반증하는 상처이다.


□ 이용시간

 - 하절기(3~10월) 09:00~18:00

 - 동절기(11~2월) 09:00~17:00


□ 이용요금

 - 어른 : \ 1,500 

 - 어린이 : \ 700


□ 웹사이트

 > http://www.jeongnimsaji.or.kr/Pages05/388




▲ 정림사지 5층 석탑


정림사지는 부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동쪽으로 금성산, 북쪽으로 부소산에 둘러싸여 있다. 

정림사지는 사비시대 수도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사찰이다. 정림사지의 대지는 아직도 복원중이며, 탑뿐만 아니라 금당, 연못 등도 갖췄을 거라 추측된다.


▲ 부지 복원상상도



우뚝 서있는 석탑 표면에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전승기념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후 비석을 세울려고 했으나, 시간문제로 인하여 아름다운 정림사지 석탑에 대신 비문을 새겨넣었다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픈 백제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다. 

단순히 치부만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정림사지 석탑에 새겨진 전승기념의 내용을 상기하고, 미래를 준비하여야 한다. 

백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외교와 정치문제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정림사지 석불좌상


정림사지 석불좌상 [보물 제108호][각주:5]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남북축선상에 놓여있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이며,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모습을 보여 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지권인(智卷印)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권인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적인 손모양으로, 불법으로서 모든 것을 감싼다는 것을 상징한다.

대좌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 대좌로 불상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상대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이며, 중대의 8각 받침돌은 각 면에 큼직한 눈 모양(眼象)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3중으로 중첩되게 표현했다.

현재 불상이 봉안된 곳은 백제시대 정림사의 강당 자리로 이 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정림사지 박물관



석탑이 위치한 곳 위쪽에는 정림사지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입장료은 정림사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기에, 부담없이 둘러볼 수 있다. 

백제시대의 불교 수용과정을 보여주는 백제불교문화관과 정림사가 갖는 의의와 가치를 역사적, 미술사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정림사지관 등 전시관이 있다.

또한 석제문양 퍼즐 맞추기, 유물조각 맞추기, 문양찍어보기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의 외관은 고즈넉함이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동양 전통의 부드러움도 갖고 있었다.

정면에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때 박물관의 모습은 아름답고 철학적이었다.



본 박물관은 정림사와 백제불교사를 주제로 전시하는 상징적 형태의 조형으로, 범어(梵語)인 만(卍)자를 모 본으로 삼고 있다.

만(卍)자의 기하학적 형태는 정방형을 기본으로 중앙에 구심점이 있고, 사방으로 회전하는 날개로 정의된다.

중심점에는 중앙홀이 위치하고, 사방의 날개로 분배된 기능은 진입, 전시, 관리, 서비스로 박물관의 형체를 구축한다.

4개의 기능은 입지 조건과 기능의 상호 연계로 조정과 타협을 통해 정림사지박물관으로 탄생한다.[각주:6]

  


▲ 정림사 복원모형


▲ 체험교구






5. 나성

▲ 부여 나성


한창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온전한 성곽길 83km만을 걷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나성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밟고 싶으면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면 된다. 

 > '제1회 세계유산 부여 나성 걷기' 후기 



부여 나성[각주:7]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둘레 8km의 성이다.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부여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양에 있는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의 하나이며,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긴 538년경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부소산성의 동문이 있던 자리에서 시작하여 금강변까지 흙으로 쌓아만든 것으로,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성의 바깥쪽 벽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안쪽 벽은 완만하여, 성위에서 말을 달릴 만한 길이 있고 곳곳에 초소가 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인 필서봉에는 횃불을 올리던 봉수터와 건물터가 남아있다. 성안에는 백제의 왕궁을 비롯하여 관청·민가·절·상가 및 방어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성의 전체적인 구조는 남쪽과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고, 또 물길도 파놓아서 자연적인 2중구조를 이루고 있다. 부여나성은 청산성·청마산성과 함께 수도보호를 위한 외곽방어시설로 중요한 성이었다.






6. 식당 / 카페


향우정



부소산성 앞 먹자골목에 있는 식당이다.

인터넷 검색 및 맛집어플에서 추천받아 방문하였다. 

가격대비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였다. 


연잎 쌈밥의 자체의 향은 괜찮았으나, 밑반찬이 딱히 맛있지 않았다. 

식당은 북적거려서 기다려야 했고, 서비스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불친절한 느낌을 받았다. 

식당 내 좌석배치도 서빙에 효율적이지 못했고, 직원분께서 계속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하는 것이 불편했다.

다음에 부소산성 근처에 오더라도, 굳이 이 식당에 재방문하지 않을 것 같다.


▲ 메뉴판




카페베네 부여점



프랜차이즈 커피숍답게 매장은 깔끔하였고 쾌적했다.

따가운 햇살아래 지친 몸을 식히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적절한 조명과 조용한 분위기는 차분히 대화를 나누기에 좋았다. 


게다가 부여의 동양적인 느낌에 맞추어 인테리어 한 실내 내부가 맘에 들었다.

쨍한 분홍빛의 모형나무는 좀 어색한 느낌이 있었지만, 쇼파도 편안했고 커피도 깔끔했다. 







  1.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97%AC%EA%B5%B0 [본문으로]
  2. http://tour.buyeo.go.kr/html/tour/info/info_010103.html [본문으로]
  3. http://tour.buyeo.go.kr/html/tour/info/info_010101.html [본문으로]
  4. https://tour.buyeo.go.kr/html/tour/info/info_010102.html [본문으로]
  5. http://www.jeongnimsaji.or.kr/Pages21 [본문으로]
  6. http://www.jeongnimsaji.or.kr/Pages15 [본문으로]
  7. https://ko.wikipedia.org/wiki/%EB%B6%80%EC%97%AC_%EB%82%98%EC%84%B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