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2. 관람팁
3. 전시회 다시보기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2022년, 서울미술관은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Fear or Love》를 선보입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는 두 가지 감정, 두려움과 사랑. 많은 예술가들 역시 이 감정 사이에서 깊은 예술혼을 끌어내 작품을 빚어냅니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31명의 미술가들은 시대의 고난과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끝내 이룩 해냈습니다.
본 전시는 두려움과 사랑의 경계에 서있던 고뇌의 결정체이자 역경의 산물인 귀한 작품들을 통해 예술이 주는 위로와 희망의 시간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출처: 석파정 서울미술관)
조선 철종과 고종 때의 중신 김흥근이 건립한 별서로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 별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석파정은 낙안당, 유수성중관풍루, 안태각, 낙원당 등 8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74년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미술관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더욱 매력적인 곳입니다.
🕑 10:00-18:00 (*월,화 정기휴무)
🎫 통합 성인 15,000원 / 통합 학생 (초/중/고) 12,000원 / 통합 어린이,우대 9,000원
🐶 반려동물 X
📞 0507-1446-0100
🅿 평일 2시간 무료주차 / 주말 1시간30분 무료주차 (이후 10분당 1,000원)
📍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11길 4-1
🌐 https://seoulmuseum.org/ABOUT
관람팁
도슨트
큐레이터가 들려주는 도슨트 프로그램 14:00 (*약 1시간 진행)
정말 훌륭하고 재밌는 설명이었습니다. 꼭 듣길 강력 추천합니다
오디오가이드 (무료)
매표소쪽에 네이버오디오 QR코드를 통해 이용가능합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9422/clips/12
티켓할인
현장 발권제로 별도 티켓할인은 없습니다.
주차
무료주차 (평일 2시간 / 주말 1시간30분), 이후 10분당 1,000원씩 과금
뮤지엄샵
현재는 별도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올해 가장 마음에 든 전시회였지만, 도록을 따로 구입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전시회 다시보기
작품 밑에 있는 텍스트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작품해설입니다.
박생광 (1904~1985)
190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박생광은 1923년 일본 교토에서 유학하여 미술을 배웠고, 오랫동안 일본에 머무르며 명랑미술전, 산미술인협회전,일본미술관전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전개했는데, 특히 한국 전통미감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적 재택화를 수집하는 데 앞장섰다.
박생광은 기존 작가들이 다루지 않던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변모시켜 한국 전통 재택화를 복원시켰다. 1977년부터 1965년까지는 박명장 작업의 절정기로 평가받는데, 이 시기 박명장은 한국 샤머니즘과 불고, 설화, 만화, 역사 등 전통적인 소재를 추구하며 토속적인 아름다움이 담겨있는 작품을 제작했다.
서울미술관의 소장품<밤과 모란>은 전통 민화에 등장하는 모란과 호랑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으로, 원래는 여섯 폭의 연속 병풍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펼쳐져 유리 액자로 표구되었다. 화면 중앙의 모란은 궁궐 병풍인<궁모란도>에서, 해와 달은 왕의 어좌를 장식하는 <일월오봉병> 또는 <십장생도>에서, 호랑이는 민화 까지와 호랑이>에서 차용했다. 이처럼 박생광은 전통적인 모티브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며 부귀영화와 장수, 가족의 화목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아주는 상징인 의미를 작품에 담아냈다.
도상봉 (1902~1977)
나의 가장 친우인 조선백자들도 항상 그 속에 미소를 띠고 있다.
유백색의 변화와 항아리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성의 노래는
나에게 신비한 교훈과 기쁨을 던져준다.
도상봉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 1886~1965)에게 서양화법을 배우고, 백자와 라일락을 소재로 한 정물화를 사실주의적인 화풍으로 그리며 한국 아카데미즘 회화를 확립했다. 1927년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한 도상봉은 일본인 주도로 진행되었던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지 않고, 후학을지도하는 미술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대원 작가의 고등학교 선생이었던 인연도 있다.
차분한 색조와 부드러운 필치로 한국 고유의 조형미를 표현하고자 했던 도상봉은 '도자기의 샘'을 뜻하는 그의 호 '도천(川)'에서 엿볼 수 있듯, 조선의 백자에 애착을 갖고 이를 소재로 한 정물화를 많이 남겼다. 도상봉의 정물화는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백자위에 꽃이 가득히 꽂혀 있는 것, 백자를 중심으로 목기나 서양식 수병과 꽃을 배열하는 것, 꽃 없이 병과 과일을 배열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서울미술관 소장품<정물>은 도상봉의 작품 중에서도 비교적 큰 사이즈에 해당하는 대표 작품이다. 단정하고 깔끔한 형태 묘사와 차분하고 섬세한 붓질, 그윽한 색조가 돋보이는 도상봉의 회화는 도자기로 대표되는 전통과 꽃이라는 자연의 조화를 통해 이상적이면서도 영원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소박하지만 우아한 멋이 돋보이는 도상봉의 작품은 예술에 있어 꾸밈없이 기본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의 회화관이 구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박수근 (1914~1965)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프랑스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만종(IAngélus)>(1857~1859)을 보고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고싶다는 꿈을 키웠으나, 부친의 사업실패로 인해 유학의 꿈을 포기한 채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일본유학 출신의 화가들과 달리 지방에서 홀로 그림을 공부해야 했던 박수근에게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엽서와 도록,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그림을 공부하며 18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봄이 오다>(1932)로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박수근은 자신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풍경을 그리며 서민들의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특히 등과 같이 거칠고 울퉁불퉁한 마티에르는 박수근 회화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우리나라의 옛 석탑과 석불을 연상시키는 화강암의 표면에서 착안했다.
서울미술관의 소장품<우물가(집)>은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초기 작품에서 보았던 사실적인 묘사는 흐려지고 대상이 단순화되는 것이 특징이며, 흰옷을 입은 여인과 빨래하는 모습 등 이전부터 박수근이 천착해왔던 소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황갈색의 두꺼운 표면 위에 대상의 윤곽선이 우아한 곡선을 이루며 뚜렷하게 살아있다. 이러한 박수근 특유의 두꺼운 마티에르는 단순히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기위한 것이 아닌, 물감을 쌓아 올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한국의 석탑과 석불에서 느꼈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김기창 (1914~2001)
1914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태어난 김기창은 8살에 장티푸스로 인해 청각장애를 얻었으나, 일찍이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김은호(金殷鎬,1892~1979)의 화숙 '낙청헌(軒)'에서 그림을 배웠다. 김은호로부터 전통채색기법과 더불어 서양화, 일본화 기법을 배운 김기창은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판상도무>(1931)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제15회 선전까지 6회 연속 입선하였으며, 연 4회 이상의 특선을 수상하며 27살이라는 젊은나이에 선전 추천 작가가 되었다.
김기창의 작품 경향은 크게 여섯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인물을 소재로 하여 섬세한 필법이 돋보이도록 그렸던 일본채색화풍 시기(1930~1946), 해방 후 입체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면을 분할하고 형태를 왜곡하는 등의 실험을 선보였던 입체주의 표현 시기(1946~1959), 반구상과 추상 작업을 전개했던 구상 시기(1960년대), 강력한 선의 수묵화 시기(1965~1974), 민화의 해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소화했던 바보산수 시기(1975-1984), 김기창만의 개성이 완연히 돋보이는 운보화풍시기(1984-1990)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서울미술관의 소장품은 김기창의 초기 작품부터 간략해진 필선과 속필 감각이 두드러지는 운보화풍시기까지 전 생애의 작품이 소개된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를 그린 <예수의 생애> 연작은 줄곧 유럽인의 시각으로 재현되었던 예수의 모습이 아닌,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한국인의 모습으로 해석한 예수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천경자 (1924~2015)
숨이 콱 막힐 듯한 이 방에서 나는 그저 화판에다 추억 속 무언가를 재생시켜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한(恨)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의 정서를 여인과 뱀, 꽃에 투영한 채색화를 선보였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후 천옥자에서'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부르고, 1942~194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척받았으나, 천경자는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고 작품에 문학적인 성격을 부여하며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줄곧 투영해왔던 천경자는 1970년대부터 세계 각지를 누비며 외국의 이국적인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드로잉과 회화로 남겼다.
여인을 둘러싼 동물들이 평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아프리카 초원의 이미지에 자신의 49세 인생을 중첩시킨 대작으로 1년여에 걸친 긴 작업이었다. 천경자의 수필 내 슬픈 전설의 첫 페이지」에서 제목을 빌려온 자전적인 작품으로,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흐느끼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슬픔의 정서를 작품으로 승화하고 있다.
<고(孤)>, <청혼>, <청춘> 속 머리에 꽃을 얹은 여인의 모습은 대표적인 천경자의 도상이다. 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인생의 모든 역경을 딛고 피워낸 꽃을 의미하는데,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여인은 오랜 세월 자신이 겪었던 외로움과 아픔을 그림으로 치유하고 있는 작가 스스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 속 여인의 눈동자를 실제 금가루를 통해 표현한 것이 인상깊다.
임직순 (1921~1996)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배운 임직순은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선한 후 해마다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며 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화려한 색채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풍부하고 강렬한 인상의 작품을 선보였고, 동시에 대담한 붓터치를 통해 유채물감의 특유의 매체적 특징을 살렸다.
임직순은 주로 실내의 여인상, 꽃과 소녀, 꽃 중심의 정물을 즐겨 그렸으며, 단순하고 명쾌한 표현을 통해 색채의 생동감과 대상의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 그는 계절의 분위기를 살린 풍경으로 우리 산천의 아름다음과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산과 맑고 높은 하늘을 그린 <산의 정경>에서는 가을의 정취가, 산등성을 따라 잔설이 보이는 <외설악이 보이는 풍경>에서는 초겨울 혹은 초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처럼 임직순의 작품은 소재가 무엇이든 노랑, 주황, 빨강 등 강렬한 난색과 두꺼운 마티에르, 과감한 붓터치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유영국 (1916~2002)
그림 그릴 엄두도 안 나고, 그리려고 해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알 길이 없어요.
답답해서 혼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해온 추상이라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가를 내 나름대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보 후퇴한 거지요.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1935년 동경 문화학원(文化學院)에 진학하여 당시 일본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운동이었던 추상미술을 수용했다. 1947년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이규상(李祥, 1918~1967)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이었던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창립했고, 이후에도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등 한국의 전위적인 미술 단체를 이끌며 한국 모더니즘 미술 정착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기까지만 해도 서구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을 실험적으로 모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자신만의 양식을 구축해나갔다. 산을 그린 작품이 많아 '산의 화가' 라고도 불리는 유영국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닌,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기반으로 고향 울진의 자연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평면화된 색면들은 유영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았던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상을 단순화하여 그것이 지닌 본질을 표현하고자 하는 유영국의 회화는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구라는 대립적인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이대원 (1921~2005)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한 이대원은 어려서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17살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가 아닌 법학과에 진학해야 했던 이대원은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수현(盧壽鉉, 1899~1978)에게 사군자와 글씨를 배우며 한국의 전통적인 점과 선의 기법을 터득했다. 그는 이렇게 터득한 동양화의 필법을 응용하여 유채 물감으로 밝은 원색의 점과 선을 리듬감 있게 표현하며 동양화의 기운생동을 화폭에 담아냈다.
1960년대 당시 한국화단에서는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대원은 산과 나무, 연못과 과수원 등 자연 풍경을 그리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이어갔다. 눈에 보이는 나무의 모습을 담은 화면에는 구상적인 측면이 있으나, 색채와 구도에서는 원근법과 투시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석한 이대원만의 작가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생명력이 넘치는 자연과 빛의 향연이 돋보이는 이대원의 작품은 언뜻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을 연상시키지만, 생동감 있는 빠른 필치로 구현된 무수한 선과 점은 한국화의 준법을 계승한 것에 가깝다.
또한 이대원은 5개 국어에 능통한 지식인으로서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로활동하며 해외에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탁월한 안목과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화랑인 반도화랑을 초대 운영하며 한국미술시장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한묵 (1914~2016)
과학과 예술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과학은 현실을 탐구하기 위한 것이고
예술은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다.
1914년 서울에서 출생한 한국은 1940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02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파리에서 활동한 한묵은 유화, 수채화,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특히 프랑스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와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한묵의 작품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평면구성' 시기와 '공간 다이나미즘' 시기로 양분된다. 전기가 2차원적인 평면성에 대한 탐구였다면, 후기의 작품은 1969년 인간의 착륙에 영감을 받아 시공간이 결합된 우주의 4차원적 공간감을 구현하고 있다. 서울미술관 소장품 <무제>에는 이러한 역동적인 우주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이 잘 드러나 있다.
대형화폭에 방사형으로 퍼지며 중첩되는 기하학적인 면, 지그재그(zigzag) 형태로 이어지는 선의 리듬과 화려한 색채의 울림은 광활한 우주공간과 함께 역동적인 속도감을 자아낸다. 화면 밖으로 확장되는 운동감은 <푸른 나선>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나선과 원형이 주가 된 화면은 마치 생명을 지닌 유기물처럼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창출하며 한국의 생명주의적인 접근법을 가시화한다. 마치 옵아트(Op Art)나 컴퓨터 그래픽과 같이 완벽한 조형미 속에 착시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그의 작품은 우주의 무한함을 재현하며 한국 기하학적 추상의 지평을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중섭 (1916~1956)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 속에 올바르게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나는 한국이 낳은 정직한 화공으로 자처하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정주 오산학교에 진학하여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임용련 (任)에게 그림을 배웠다. 당시 임용련은 미국 예일대학에서 드로잉으로 수석 졸업을 할 만큼 드로잉 실력이 뛰어난 화가였는데, 이에 이중섭 또한 임용련의 영향을 받아 많은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
이중섭의 작품은 크게 드로잉, 유화, 수채화, 엽서화, 은지화, 삽화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채색화의 경우에도 소모가 중심이 되며, 표현주의적인 채색 방식과 함께 물감을 칠한 뒤 긁어내거나 연필로 누르듯 드로잉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렇듯 재료와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과 기법을 창안해낸 이중섭은 특히 남다른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소'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서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황소>는 이러한 이중섭 회화의 개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페인트와 유채를 섞은 혼합재료로 제작된 이 작품은 공업 안료의 특성으로 인해 종이의 우글거림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난으로 인해 유화를 그릴 재료가 넉넉하지 못해 페인트와 종이를 사용했다고 알려졌지만, 이중섭에게 페인트는 단순히 물감의 대체제가 아닌 자신만의 역동적인 표현을 살리기 위한 재료이기도 했다. 이중섭은 짙은 선을 통해 소의 늠름한 골격을 완성하고, 그 위에 금방 마르고 흘러내리는 페인트의 속성을 살려 특유의 빠르고 힘 있는 붓터치를 구사하며 소의 역동적인 동세를 완벽히 표현했다. 이처럼 당당한 기세를 자랑하는 이중섭의 소는 개인적인 고통과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굳건하게 이겨내고자 하는 이중섭의 강한 의지를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학진, 황영성, 이왈종, 최영림, 김상유
김환기 (1913~1974)
<섬 스케치>는 김환기의 초기 작품으로 오랫동안 흑백 사진으로 전해지다가, 2013년 9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김환기의 초기 작품이 얼마 현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작품입니다.
작품의 소재는 김환기의 고향인 안좌도의 풍경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상의 윤곽선은 기본적인 형태감만 남긴 채 극도로 단순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물을 조각조각 분해한 뒤 평면 위에 재배열하고 중첩시킨 입체파의 조형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또한 밑 색을 칠한 뒤 그 위에 다른 색으로 덧칠을 하여 사이사이 밑 색을 보여주는 기법은 이후 김환기 작품에서 중요한 특징이 됩니다.
어렸던 김환기는 매일 아침마다 어머니들이 가족들이 먹을 물을 구해오는 모습을 봅니다.
섬가 갯바위마다 밤새도록 해무가 끼거나 안개가 꼈을 때 응집된 물방울은 항아리 안으로 흘러들어 가 생수가 됩니다.
어머니들은 그 항아리를 해가 뜨기 전에 머리에 이고 돌아옵니다.
아름다운 굴곡진 여성의 몸과 백자 항아리로 보이는 이 항아리들은 어머니들이 가족들을 위한 생수를 구해오는 모습입니다. 환기 특유의 푸른색과 수많은 색상을 조형적으로 사용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자기의 미술 세계를 점점 증축하고 넓혀나갔던 것 같습니다.
수집가의 문장
제가 생각하는 김환기 화백의 인생 걸작은 <십만 개의 점>입니다.
오늘날 김환기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는 대표작은 <우주>, <하늘과 땅> 그리고 십만개의 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십만 개의 점>을 역작으로 꼽는 이유는 이 안에 <우주>와 <하늘과 땅>의 구성이 모두 녹아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작품에는 다른 두 작품에 없는 사각 도상이 더해져 우리가 사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그야말로 김환기의 예술 세계가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가는 끝내 본인이 다 쏟아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 부족했던 부분은 후대의 우리가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소장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100억이 넘어가는 가격을 듣고 좌절 했습니다. 지금껏 비싸더라도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야겠다는 의지로 이 길을 걸어왔지만, 100억이라는 돈은 쉽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 작품이 외국으로 나가면 김환기 최고의 작품을 영영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아끼고 아꼈던 자식 같은 소장품들을 팔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그 모든 작품을 합친 것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인지, 어쩌면 김환기 화백이 실패라고 했던 것처럼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실패한 선택이라고 평가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로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로 세지 않아도 되는 것만큼 마음의 위로를 주는 것도 없지요.
수집가의 문장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아침의 메아리>는 앞으로 나아갈 서울미술관의 10년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김환기화백은 아침이 밝으면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습니다. 죽느냐사느냐 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붓을 드는 심경은 몸소 체험하지 않고는 모를 일이지요.
서울미술관을 설립하고 저의 지난 10년도 기쁨과 두려움의 반복이었습니다. 미술관에와서 행복해하는 대중들의 모습을 보면 한없이 기쁘다가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무게감에 짓눌릴 때도 있었지요.
새벽의 별빛과 아침의 소리가 공감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김환기화백의 작품을 처음 본 순간,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는 큰 그릇이 떠올랐습니다. 서울미술관의 지난 10년이라는 시간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더 깊은 감동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10년을 또 묵묵히 걸어가리라다짐하게 된 작품입니다.
이우환
모노하(物派)의 이론과 작업의 선구자인 이우환(1936- )의 <선으로부터>(1974)는 흰 캔버스 바탕에 파란색 선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내려 그어가면서 그 흔적을 담은 것이다. 단조로운 화면구성과 단색의 색채는 담백한 동양적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선들은 하나로 완성된 개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이며, 그 관계는 운율적이다. 굵기와 형태가 거의 동일한 선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선명한 푸른색은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그 자취가 사라지면서 희미해진다. 이러한 선은 결과보다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내재된 본질적인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 작품의 근본적 요소인 선은 동양적인 기(氣)와 생명력의 근본이자 출발점이 되고, 따라서 작품은 마음을 비우고 선을 긋는 일회적인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무위자연(無爲自然)’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출처: MMCA)
김창열
출구
관람을 마치면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스팟과 레트로한 간판이 있습니다.
게다가 '루네쌍스 다방'이라 적힌 따뜻한 톤의 입간판은 서울미술관이 걸어온 길에 여운을 더해줍니다.
사실 서울미술관 개관 10주년전에는 설립자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2012년은 우리나라의 미술사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었던 미술 전시 '기조 동인전'이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조 동인전은 이중섭과 친구들, 총 5명의 작가들이 부산의 루네상스 다방에 모여 작품 한두 점 들고 시작한 전시입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 기조동인전을 오마주한 전시가 올해 열렸습니다.
한국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마스터피스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어 정말 뜻깊은 전시였습니다.
좋은 전시회를 함께 나눠준 석파정 서울미술관에 무한한 영광을 바칩니다.
소나기가 거세던 날의 석파정 방문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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