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느껴보는 왕가의 산책길
비 오는 날, 한옥 툇마루에 앉아 빗소리 듣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요새는 유튜브 덕분에 아파트 거실에서도 편안하게 비오는날 한옥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왠지 오늘은 직접 고즈넉한 궁궐의 정원을 걸으며 빗소리를 즐기고 싶은 날입니다.
융건릉의 정확한 명칭은 화성 융릉과 건릉이지만, 본 포스팅에서는 편의상 '융건릉'으로 부르겠습니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담긴 왕릉인 융건릉은 사적 제206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을 합쳐 부르는 합성어입니다.
융건릉 바로 앞에 별도 전용주차장이 있어 편하게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입장료는 대인(25세~64세) 1,000원이며, 24세이하, 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누구나 무료관람할 수 있습니다.
매표소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건릉 우측에는 융릉이 있습니다.
정해진 관람동선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직계순서에 따라 장자(세도세자)의 릉부터 관람하였습니다.
“역사문화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매표소 근처에 있는 융건릉 역사문화관입니다.
융건릉 역사문화관에서는 융건릉 조성, 조선왕조에 대한 지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해설을 희망하는 경우 내부 해설사 선생님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사이에 역사문화관 해설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12시 -13시 제외)
사도세자의 묘는 처음부터 화성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후,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으로 시호를 사도(思悼), 묘호를 수은(垂恩)으로 내리고 현 서울 동대문구에 아들의 묘를 조성하였습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묘를 원으로 높여 영우원이라 하였고, 1789년(정조 13) 영우원을 현재의 자리로 옮긴 후 원의 이름을 현륭원으로 바꾸었습니다.
1815년 (순조 15) 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현륭원에 합장되었고, 1899년(광무 3)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역사문화관을 나오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은 건릉, 오른쪽은 융릉입니다.
“소나무길”
건릉으로 가는 소나무 길입니다.
수백 년 동안 왕릉을 지켜온 소나무 숲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었을까요.
상쾌한 녹음과 어우러진 경쾌한 빗줄기가 왕릉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융건릉은 산책하기 좋은 숲길도 잘 조성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곤 합니다.
왕들이 거닐었던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겨봅니다.
“융릉”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향합니다.
홍살문은 신성한 장소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문으로,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위쪽에 창살이 있기 때문에 홍살문이라 부릅니다.
가운데 길은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입니다.
오른쪽 길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어로'로, 관람객은 어로를 걸으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정자각은 제향의 중심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 정청과 배위청으로 나뉘며, 두 개가 합쳐진 모양이 '정(丁)'자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합니다.
정자각 뒤편으로 가면 사도세자가 묻혀 있는 융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릉 주변에는 왕을 지키는 석호, 석양, 무석인 등 돌로 만든 조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보이는 왼쪽 건물은 '비각'으로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이고, 오른쪽 건물은 '수복방'으로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물던 방입니다.
곤신지(坤申方, 남서방향)는 융릉에서 처음 보이는 물로 풍수지리적 이유로 인해 만들어진 융릉의 생방(生方)입니다.
조선왕릉 중 드물게 연못을 원형으로 조성한 곳으로. '용의 여의주' 형상을 띄고 있습니다.
갈림길이 있던 곳까지 되돌아 간 다음, 정조와 효의왕후가 합장된 건릉으로 향합니다.
“건릉”
융릉 앞에 곤신지를 제외하면 건릉은 융릉과 유사한 건물배치를 갖고 있습니다.
건릉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후 현륭원(융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런데 효의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를 치를 때 건릉 자리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현재의 자리(현륭원 서쪽)로 옮기고 효의황후를 합장하였습니다.
정조대왕이 묻힌 건릉은 그의 아버지 묘에 비해 향로와 어로의 규모가 작은 편이었고 정자각은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정조는 평소 수원향교 터를 능 자리로 염두에 둿으나, 1800년 1월 마지막 현륭원 원행길에서 강무당(무예 강습소)이 있던 자리 뒤쪽을 능 자리로 점찍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현륭원의 동쪽 두 번째 산줄기인 강무당 뒤 언덕에 정조를 모신 후 건릉이라 불렀습니다.
효의황후가 세상을 떠나 건릉에 합장하려고 했는데, 대신들이 터가 좋지 않다고 하였고, 정조가 이곳을 실제로 보았으면 능 자리로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원래 정조가 능 자리로 염두에 두었던 수원향교 터로 능을 옮겨 효의황후를 함께 모시기로 했습니다.
새 건릉 자리와 옛 건릉 자리가 서로 가까운 석물과 건물들은 옮겨 와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다만, 옛 건릉자리는 대신들의 말대로 터가 좋지 않고 습해서 명기를 비롯한 부장품은 물에 잠겨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후, 2011년에 옛 건릉자리를 발굴하였는데 국장도감의궤와 거의 일치하는 일부 부장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재실”
융건릉 관람을 마쳤다면, 왕릉을 관리하던 공무원이 머물던 재실로 매표소의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재실은 제례에 앞서 관리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제례를 준비하던 곳입니다.
평소에는 관리들이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을 돌보았습니다.
주요 시설로 재실 외에 향을 보관하는 안향청, 제례업무를 주관하는 전사청,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는 제기고, 행랑채 등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입니다.
비자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개비자'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비자나무는 남해안에서 자라는 잎 넓고 활엽한 키 작은 비늘잎나무인데, 개비자나무는 중부지방까지 추운 곳에도 올라옵니다.
머리빗 모양의 잎과 주홍빛 열매로 인해 아름다운 정원수로 자라며, 많은 포기가 한꺼번에 자라기를 좋아합니다.
조선왕릉과 어우러진 푸른 숲길, 비 오는날 기분좋은 흙내음.
비오는 날 방문해서 더욱 좋았던 화성 융건릉 산책이었습니다.
융건릉을 모두 관람하는데 약 2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꼭 왕릉 관람이 아니더라도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볍게 나들이하러 나오기 좋습니다.
다만, 음식물, 배드민턴, 자전거, 반려동물, 그늘막, 돗자리, 기타 놀이기구 등은 반입할 수 없습니다.
화성 융건릉 🕑 09:00~18:30 (*월요일 정기휴무) 🎫 성인 1,000원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무료) 🎧 - 🐶 반려동물 X 📞 031-222-0142 🅿 주차가능 📍 경기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 https://royal.khs.go.kr/ROYAL/contents/menuInfo-gbg.do?grpCode=r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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