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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콘위 성 (Conwy Castle)

 

2014.10.05

 

웨일즈의 Cadw Membership에 가입한 후로 웨일즈의 고성(古城)을 찾아다니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Cadw(=Castle). 단어 그대로 웨일즈에 있는 대부분의 성(城)을 멤버십 기간 동안, 할인된 가격 또는 무료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다른 혜택도 많아서, 웨일즈 여행을 할 시, Explorer Pass (3 or 7 days) 구매를 하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웨일즈를 둘러볼 수 있다.

 

 

 

▲ Bangor 기차역

 

어김없이, 여행의 시작은 Bangor 기차역이다. 

영국의 기차삯은 한국에 비해 굉장히 비싼편이다. 

오히려,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빠르고 저렴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미리 예매를 해놓는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다. 

추가로 영국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 학생 프로모션 등으로 기차역 또는 인터넷으로 가입하면 저렴한 가격에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구간 별 기차운행사가 다를 수 있으니, 가격비교 후 저렴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

 

 

▲ 주로 이용했던 운행사

 

주로 thetrainline이 저렴한 가격으로 Deal이 많이 제공되어, 제일 많이 이용하였다. 

위 3개 회사, 모두 어플리케이션(APP)을 제공한다. 

검표시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표를 보여주거나, 예매 후 기차역 발권기계에서 해당코드를 입력 후 발권하면 된다.  

 

▲ Conwy Castle

 

카디프를 제외하고, 웨일즈 지역 대부분에는 고층빌딩/아파트가 없다.

대체적으로 그 지역의 고성(古城) 또는 대저택에 가면, 그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콘위 성은 웨일즈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사실, 콘위 성은 웨일즈의 슬픔이 담겨있다. 

13세기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1세'[각주:1]가 웨일즈를 정복하며, 만든 '아이언 링(8개의 성)[각주:2]' 중 하나이다. 

이를 기념하여 영국정부는 '조형물'을 세우려고 했으나, 웨일즈인의 반발에 그 계획은 폐기되었다.[각주:3]

 


콘위 성은 영국 웨일스 콘위 자치시에 위치한 중세의 방어시설이며 웨일스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다. 

콘위성은 1283년에서 1289년 사이에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를 침략한 시기에 지었다. 

콘위 지역에 성벽으로 둘러싼 도시를 건설하고, 방어 목적을 위한 이 성을 건설하는데 15,000파운드가 소요되었으며 당시 물가로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콘위 성은 여러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유네스코에서는 콘위 성을 13세기 후반과 14세기 초반 유럽 군사 건축의 가장 정교한 예로 여긴다. 

직사각형 모양의 성체는 현지와 해외에서 조달된 석재로 지어졌고 콘위 강의 군사적 요충지를 내려다보는 해안 능선에 위치한다. 

성은 내부와 외부로 나뉘며 8개의 탑과 2개의 망루로 방어하고 강과 연결되는 통용문을 통해 바다에서 재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제레미 애쉬비는 콘위 성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궁실'이라고 묘사했다

Wikepedia


 

2. 콘위 현수교 (Conwy Suspension Bridge)

▲ Conwy Suspension Bridge

 

콘위 현수교 또한 콘위성에서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콘위 현수교는 영국의 토목공학자, 토마스 텔포드[각주:4]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는 웨일스의 용수로(Pontcysyllte Aqueduct)부터, 메나이브릿지, 콘위현수교 등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그는 1826년에 콘위 현수교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3세기의 콘위성과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건축을 몸소 보여주었고, 콘위 현수교는 콘위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콘위 현수교는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통행료는 £1 였다.  

 

The Conwy Suspension Bridge is a Grade I-listed structure and is one of the first road suspension bridges in the world. Located in the medieval town of Conwy in Conwy county borough, North Wales, it is now only passable on foot. The bridge is now in the care of the National Trust. It originally carried the road from Chester to Bangor.

 

 

3. 아버콘위 하우스 (Aberconwy House)

▲ Aberconwy House

 

콘위 성 관람을 마치고, 중세시대 부자가 살았던 집에 갔다.

Aberconwy House는 웨일즈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집 중 하나이다. 

중세시대 부를 축적한 대상인이 지었으며, Plas Mawr 와 함께 현존하는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곳이다.[각주:5]

14세기에 만들어 졌으며, 세월의 흐름과 복원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영국 교환학생 당시, Natioanl Trust 멤버십에도 가입했기에 무료로 볼 수 있었다. (*National Trust 지역에 따라 무료/할인혜택)

클래식하기도 하며, 빈티지한 가구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정말 좋았다.

관람을 하며, 왜 영국에서 가드닝, 식물원, 차(茶)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세월을 품은 수려한 나무처럼, 가지와 뿌리는 집안 곳곳 자리잡고 있었다. 

 

▲ Conwy 

 

게다가 Aberconwy House 꼭대기 층에서는, 아름다운 Conwy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남뷰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한 눈에 바라보이고, 교통이 편리한 곳은 넉넉한 자들이 사나보다. 

Aberconwy House 알아보기

 

4. 영국에서 가장 작은 집 (The Smallest house in Great Britain)

▲ The Smallest House / Coast 

 

콘위성 성곽을 걷고, 해안가로 나오면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사람이 몰린 곳을 보면, '영국에서 가장 작은집'이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밖에서 동화같은 느낌을 즐기는 것으로 충분해 해변에서 여유를 즐겼다.

 

그리고, 콘위 역으로 향하니 웨일스의 위대한 군주 '허웰린[각주:6]'이 인사를 하듯,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 Llywelyn the great


 

 

  1. 에드워드 1세(영어: Edward I, 1239년 6월 17일 ~ 1307년 7월 7일, 재위 1272년 11월 16일 ~ 1307년 7월 7일)는 키가 188 cm여서 ‘다리 긴 왕(Longshanks)’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동안 웨일스와 스코틀랜드를 정복해 다스렸다.헨리 3세의 장자로, 노르만 정복 이래 영국 최초의 국민적인 왕이라 불린다. 왕세자 시절에 가스코뉴와 아일랜드의 영주로서 활약했으며, 1258년∼1265년의 내란에는 부왕을 도왔다. 1265년 시몽 드 몽포르를 격파하는 데에 공을 세우고 1271년 십자군에 참가, 부왕의 사후 원정 중에 왕으로 선출되어, 1274년에 귀국하여 대관(戴冠)하였다.아버지 헨리 3세 때부터 있어 온 외국인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책을 썼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토지 등 부동산의 양도 및 상속에 관한 중요한 법률을 만들어 '영국의 유스티니아누스'라 불리었다.재판 행정 제도를 확립하고 일련의 제정법(制定法)을 발포, 봉건사회의 질서 유지에 노력하였다. 또 산업에 주력하고 1285년 상인법을 발령, 양모와 가스코뉴의 술 생산을 장려하였다.그는 프랑스 왕에게 신종(臣從)하여 대륙에 있어서 나바라, 카스티야의 왕위계승문제, 아라곤 왕 알폰소와 교황·프랑스 왕 필리프 단려왕(端麗王)과의 조정(1291)에 활약이 컸다. 1295년 성직자와 귀족, 각주에서 2명의 기사 및 도시의 대표를 모아 '모범 의회'를 열어 영국 의회의 기초를 쌓았다. 말년에 단려왕의 가스코뉴, 플랑드르 공격을 받아 1303년 파리 협정에서 타협을 보았다. 그러나 또 스코틀랜드의 반란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 조달 때문에 국내의 반란을 유발하였다.그는 1307년 그가 정복하였던 스코틀랜드가 로버트 1세를 중심으로 독립하자 이를 정벌하기 위하여 병력을 이끌고 진군하던 도중 그해 7월 7일 칼라일 근방에서 장남 에드워드를 불러 “나를 화장하여 뼈를 가죽 부대에 넣어 군사들과 함께 진군하라. 그리고 스코틀랜드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묻어 달라”라는 유언을 남기고는 사망하였다. - Wikepedia [본문으로]
  2. ○ 무자비한 무왕(武王) 에드워드 1세 : http://www.discovermiddleages.co.uk/king-edward-i/○ '에드워드 1세'가 세운 북웨일즈 성 : http://www.timeref.com/castles/castedwd.htm [본문으로]
  3. https://www.bbc.com/news/uk-wales-north-east-wales-41187853 [본문으로]
  4. https://g.co/kgs/2GqcTc [본문으로]
  5. Aberconwy House is a rare survivor of a number of such houses-cum-warehouses built by English merchants trading on the Welsh Marches in the medieval period.[4] Tree-ring analysis of the roof timbers shows that the trees were felled c. 1417–1420.[5] This dating makes it one of the oldest, datable houses in Wales and the importance of the building was recognised in 1950 when it was designated a Grade I listed building.[5] [본문으로]
  6. 허웰린 압 요르웨르스(웨일스어: Llywelyn ap Iorwerth [ɬəˈwɛlɨn ab ˈjɔrwɛrθ], 1172년경 ~ 1240년 4월 11일)는 중세 웨일스의 군주이다. "위대한 허웰린"이라는 뜻의 허웰린 바우르(웨일스어: Llywelyn Fawr [ɬəˈwɛlɨn vaur], 영어: Llywelyn the Great)라고도 한다. 웨일스 북부 귀네드의 공작으로 외교 및 군사 활동을 통해 여러 제후들이 할거하던 웨일스를 통일하고 40년 이상 지배했다.허웰린이 어렸을 적, 조부 오와인 압 그루푸드가 사망(1170년)하자 허웰린의 두 삼촌이 나라를 각자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허웰린은 조부의 상속자로서 강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는 데 성공했다. 1200년 귀네드의 유일한 지배자가 된 허웰린은 같은 해 잉글랜드의 존 왕과 조약을 체결해 이후 10년 동안 잉글랜드와 평화를 유지했다. 1205년 허웰린은 존 왕의 친딸 조안과 결혼했다. 1208년 존 왕이 포이스 웨느위뉜 공작 그웨느위닌 압 오와인을 사로잡자 허웰린은 권력공백지대가 된 남쪽의 포이스를 병합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1210년 조약이 파기되고 1211년 존 왕이 귀네드를 침공했다. 허웰린은 코느위 강 서안의 모든 땅을 넘겨주는 것을 조건으로 평화를 체결했으나, 이듬해 웨일스의 다른 제후들과 연합해 빼앗긴 땅을 도로 되찾았다. 허웰린은 1215년 존 왕에게 대헌장을 강요한 귀족들과 동맹을 맺었고, 1216년 웨일스의 지역 패자가 되어 아베르디피에서 회맹을 열고 다른 제후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존 왕이 죽자 허웰린은 그 후계자 헨리 3세와 1218년 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15년간 허웰린은 잉글랜드 국경지대의 제후들과 싸우면서 또한 일부 제후들과는 연합하는 일을 반복했다. 1234년 중반에 강화가 맺어짐으로써 허웰린의 정복사업은 끝을 맺었다. 허웰린은 1240년 죽을 때까지 권력을 유지했으며 아들 다버드 압 허웰린이 작위들을 계승했다중세 초기 웨일스는 몇 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었으나 귄네드 왕국이 가장 강력하였으며 그루피드 앱 리웰린과 같은 귄네드의 군주가 브리톤의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였다. 11세기 경까지 웨일스는 이웃한 엥글로 족의 국가 머시아와 각축하고 있었으며 노르만의 잉글랜드 침공으로 인해 잉글랜드에 복속되었다. 1238년 최후의 리웰린이 잉글랜드에 정복되었다. 이후 웨일스는 웨일스 공국으로서 잉글랜드 왕국의 웨일스공에 의해 통치되었다. 16세기에 들어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완전히 합병되어 잉글랜드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웨일스는 문화, 언어 면에서 잉글랜드와 다른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다. [본문으로]